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튜어트 피어스 (문단 편집) === 국가대표 === [[파일:external/e0.365dm.com/stuart-pearce-england-jordi-cruyff-netherlands-holland_3348699.jpg]] 피어스는 1987년 5월 19일 웸블리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서 국가대표로서 데뷔했다. 당시 그의 나이 25세. 이후 그는 [[케니 샌섬]]을 제치고 잉글랜드의 주전 레프트백이 되어 A매치에 꾸준히 출전했다. 이윽고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 차출된 그는 카메룬과의 16강전에서 [[데이비드 플랫]]에게 절묘한 패스를 찔러서 그의 골을 유도해냄으로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당시 피어스는 기존의 레프트백에서 한층 더 올라간 '공격형 레프트백'으로서 공격 전개를 주도하는 역할을 깔끔하게 소화해냈다. 이후 잉글랜드는 4강에 진출할 수 있었지만 서독과의 4강전에서 1:1 무승부 후 승부차기에서 분패하고 말았다. 이 때 피어스는 승부차기에서 실축을 범한 뒤 눈물을 흘리며 그라운드를 떠났다. 1991년 6월 8일, 그는 뉴질랜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이 경기가 그의 국가대표로서 40번째 경기였다. 그러나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테리 베너블스]]는 그를 배제하고 [[그레이엄 르 소]]를 기용했다. 하지만 르 소가 1995년 12월에 무릎이 부러지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자, 베너블스는 피어스를 주전으로 재기용했다. 피어스는 자국에서 열린 1996 유로에도 참가하였고, 유로 본선에서도 좋은 경기력을 꾸준히 보여줬고 대표팀은 다시 한번 4강에 진출했다. 준결승전의 상대는 독일. 1990년에 이어 다시 한 번 경기는 1-1 스코어로 120분이 종료된 후 승부차기에 돌입. 피어스는 3번 키커로 나섰는데, 이번에는 골키퍼를 완전히 속이면서 성공. 성공하고 나서는 씨익 웃으면서 [[따봉|엄지손가락을 관중들에게 들어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6번 키커로 나선 [[가레스 사우스게이트]]가 실축하면서 승부차기 스코어 6-5로 독일에게 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1996 유로 대회가 끝난 뒤, 피어스는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자 잉글랜드의 새 감독으로 부임한 [[글렌 호들]]이 좀 더 있어달라고 부탁했고 피어스는 심사숙고 끝에 경력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피어스는 1998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지는 않았지만 유로 2000 지역 예선을 치르는 대표팀에 차출되어 [[케빈 키건]] 감독의 지휘하에서 베테랑으로서 어린 선수들을 다독이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1999년 9월 8일 폴란드와의 경기에 출전했고 이 경기에서 잉글랜드는 0:0 무승부를 거두었다. 이것이 피어스의 마지막 대표팀 출전이었다. 이후 그는 무릎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고 말았고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피어스는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78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기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